작년에 학교 캠퍼스를 거닐다가 하루에 전도를 두 번이나 "당했습니다". 전도하시는 분의 모습이나 전단지를 보니까 같은 단체이구나 싶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기독교인입니다"하고 말하고 지나갔는데, 두 번째 만났을 때는 기독교인이라고 말해도 붙잡기도 하고, 어떻게 전도하나싶어 궁금하기도 하여 "전도를 당했습니다".

 전도하시던 분들은 청년목회로 유명한 모 교회 지체들이었습니다. 당시가 수시모집 합격자 발표 기간이라 아마도 장래 새내기들을 대상으로 전도하였던 모양이었습니다.

 두 번째 전도자를 만났을 때 분명히 기독교인이고 교회를 잘 다니고 있다고 말했음에도 그 지체는 제게 "전도"를 계속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전도라는 것이 순전히 교회 자랑이었는데, 무엇무엇이 너무 재미있다느니, 청년이 많아서 너무 재미있을 거라느니, 재미를 빼면 사실 들은 "도"가 없었습니다.

 순간 기분이 좀 나빠서 저는 교회 잘 다닐테니까, "전도" 하시라고 말씀드리고 헤어졌습니다. 멀리서 그 분이 다른 학생들에게 전도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열에 아홉은 전도가 아니라 교회 자랑이요, 교인 빼가기 였습니다. 그 분이 저에게 담임목사님 자랑도 하셨는데, 목사님께 어떤 복음을 받았을까 궁금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데살로니가 1장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대대적으로 칭찬합니다. 그들은 오늘날 그리스 지방의 본(model) 교회라고까지 칭하고 있습니다(7절).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칭찬하는 이유는 그들이 서로 "재미있게" 지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일들을 일으키고, 사랑으로써 수고하고 헌신하기를 아끼지 않으며, 소망으로써 어떠한 고난도 감내하고 살아내었기 때문입니다(3절).

 그런데 그들이 확실한 그리스도의 몸이요 이러한 본이 되는 교회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울이 전한 복음의 온전함 때문이었습니다. 그 복음은 말로만으로 된 것이 아니라, 말씀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능력이되었고, 성령의 임재와 감동으로 되었으며,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에 대한 확신이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 바울과 그의 동료들은 종과 같은 모양으로 그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애썼습니다(5절).

 복음을 받는 자는 복음을 전하는 자를 닮고, 복음을 전하는 자는 그리스도를 닮아 있습니다(6절). 그래서 복음을 받는 자는 복음을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은 온전하여서 우리가 믿음, 소망, 사랑을 가지고 애쓰고 수고하고 인내할 수 있게 만듭니다. 이러한 복음이 아니고서는 이 세상에 한 명의 사람도 그가 "하나님께 택함을 받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4절).

 복음을 온전히 전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새벽이슬은 선교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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