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에 대해서는 종교개혁에서부터 유래되어 개혁주의자들에게 전수된 전통적 관점과 20세기 후반의 일단의 신학자들에게서 개진된 새로운 관점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이를 간단히 살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이 글은 『로마서(WBC주석), 제임스 던-새로운 관점』, 『로마서의 신학적 강해』, 더글라스 무-전통적 관점, 『로마서 듣기』, 최갑종-전통적 관점 을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우선 전통적 관점에서는

1. 로마서는 “개인”의 구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고, 따라서 롬 1-4장이 핵심이다.
2. 그 구원은 “믿음”에 의한 칭의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새로운 관점이 비판하기를,

1. 초대 교회 당시에는 내관적(introspective) 경향이 없었으며(즉, 개인에 대한 이해가 없었으며), 이는 근대 이후 서구 관점에서 로마서를 보았기 때문에 발생한 오류이다. 대신 바울은 당대 초대교회에 압도적인 이방인의 수적 우위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로마서의 핵심은 9-11장이다.
2. 이신칭의의 교리는 루터의 개인적 체험에 근거한 것이며, 유대교는 전통적 관점에서 보는 것처럼 행위를 강조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언약적 포섭에 구원의 근거가 있다고 보았다. 대신 유대교가 강조한 것은 그 구원에 머물러 있기 위해서 율법을 실천할 것이 강조되었다(언약적 신율주의-율법주의가 아님). 그러므로 바울이 강조한 것은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율법”의 문제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쟁에서 새로운 관점이 제시하는 바는 전통적 관점이 지나치게 개인의 문제에 집중해서 교회론적-공동체적 관점을 도외시했다는 점입니다. 또한 지나치게 믿음의 문제에 집착한 나머지 행위의 문제를 상실했다는 점입니다. 여하튼 새로운 관점은 로마서 읽기에 있어서 실천론적이고 사회학적인 함의를 가져옵니다.

이에 대해서 더글라스 무는 전통적 관점에서 새로운 관점의 일부를 수용하는 절충적 태도를 보입니다.

1. 로마서가 구원의 문제보다 민족의 문제를 중심으로 삼았다기 보다, 로마서의 전반부는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를, 후반부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수평적 관계를 다룬 것으로서, 후자는 전자에 종속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2. 전통적 관점에서 유대교를 행위의 종교로 오해한 것은 오류이다. 그러나 분명 유대인들은 율법을 강조한 나머지 하나님의 은혜와 선택을 소홀히 하게 되었다. 바울이 비판한 율법은 단순히 유대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자신의 문제로서 하나님의 은혜와 대립하는 인간의 모든 ‘선한 행위’로 보아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의 무의 관점이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하나님 나라의 신학에서 로마서를 읽을 때는 실천론적이고 사회학적인 통찰을 유지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관점이 제시하는 해석론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