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de Theater - Acropolis - Athens
Herode Theater - Acropolis - Athens by christophandre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1.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혁신적 정체로서의 민주정. 소규모 공동체, 경제적·군사적 독립성이 주요 요인. 이는 공동체 규모, 정치적 이질성이 민주주의에서 요주의 문제임을 나타낸다.


2. 고전적 민주주의는 인민에게 주권이 있다는 것이 특징. 즉, 인민이 공권력에 직접 참여한다는 것. 그래서 공무와 공동선에 사생활을 종속시켰다. 그러나 이것은 공동체 우위의 강제적 사회를 뜻하는 것이 아니며 - 이점에서 자유주의적 비판은 무의미 - 시민 각자가 그러한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갖는 것이 자기완성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자율적이었다. 치자와 피치자의 완전한 일치가 특징.

그들은 상이한 자들 간의 숙의를 존중하고 결과에 권위를 부여. 즉, 법의 지배, 절차적 정당성, 법률의 합법성 검토(오늘로 치면 합헌성일까?) 등을 인정. 또한 자신의 삶에 자신이 주인이 되기를 추구했으며, 폴리스에서 자신의 자리를 적절히 실현하는 것이 정의라고 여겼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에서 분석하기를, 고전적 민주주의 모델은 자유와 평등이 불가분적으로 얽혀서 발생한 정체이다. 자유는 하나, 교차지배, 둘, 자기결정권을 의미. 교차지배를 위해서 통치에 있어 산술적 평등을 보장해 준다(금전 보수, 보통선거, 기회균등). 따라서 평등은 자유의 기초이다. 그러나 이것은 역으로 자기결정권을 제한한다. 그러나 이것은 타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당연하고, 본인도 지배자가 될 수 있는 한 이를 제한한다고 큰 위험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고전적 민주주의는 자유를 의미하며, 자유는 엄격한 정치적 평등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반대. 그리스의 위대한 사상가들은 아테네의 고전적 민주주의를 정당화하지 않았다.


3. 아테네의 민회는 전체시민으로 구성되어 주요 의제를 결정하기 위해 자주 열렸다. 만장일치와 합의가 이상이었지만, 보완책으로 다수결에 따른 투표를 두고 있었다. 의제 설정을 위해서는 비교적 소수인 500인의 평의회가 있었고, 평의회는 50인의 위원회의 지원을 받았다. 법정도 민회와 유사했으며, 권력이 독점되지 않고 책임성 확보를 위한 다양한 제도가 있었다.


4. 그러나 고전적 민주주의는 성인 남성의 것으로서 철저히 노예제 없이는 유지할 수 없는 체제였다. 그것은 실질적으로는 시민의 전제정이었던 것. 또한 아테네 민주주의는 소수 명문가에 지배되기 쉬웠고, 그들에 의해 경쟁적으로 운용되었다. 이에 따라 민회의 결정은 충동적이었고 비합리적이었다. 그럼에도 아테네 민주주의가 상대적으로 장기간 번영한 것은 정복국가로서 물질적 이익이 공유되었기 때문.


5. 플라톤의 비판. 민주주의가 다수의 지배를 꾀하는 것에서 오는 본질적 모순. 하나, 민주주의는 현자를 우대하기보다, 대중적 평판을 우대함으로써 자멸. 둘, 자유와 평등에 대한 요구는 권위의 유지나 질서와 양립 불가능. 왜냐하면 자유는 방임을 낳고, 이는 사회 통합을 해치며, 공동선과 정의는 불분명해지기 때문. 이 때 어떤 파벌이 다수의 지지를 얻어 참주가 될지라도 그는 철인이 아닌 한 이기적 통치를 행할 것.

플라톤이 이러한 결과에 이르게 된 것은 그가 공동선이란 객관적인 것으로서 현실과는 무관한 이상이 있다고 보기 때문. 또한 개인과 국가는 유기적 통일체로서 개인이 노동분업에서 정명(正名)을 지킬 수 있어야 정의와 공동선이 실현된다고 보기 때문. 그리고 궁극적으로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은 조화롭게 통합된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 이 점에서 17세기 이후의 자유주의 전통과 단절-.

고전적 민주주의 모델과 그의 비판은 근대 서구 정치사상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재미있는 것은 역사적으로 정치사상가의 압도적 다수는 민주주의를 바람직하게 보지 않았다는 것. 한편 아테네는 제국이 등장하는 시기에서 급진적 민주주의의 약점, 즉 사회적 불안정으로 인해 권위주의적 국가들에 종속되고 말았다.


<아...>


1. 고전적 민주주의는 “고전적”이라는 명칭과 “고대”라는 시기에서 오는 선입견에도 불구하고 정체에 대한 매우 복합적인 사고를 진행시켜 얻어낸 결과였다. 이는 오늘날 민주주의에 공공선의 중요성, 개인과 사회 및 국가의 관계, 숙의와 민주적 권위의 중요성, 자유와 평등의 관계, 통치제도와 책임성의 문제 등 복합적인 영감을 던져준다.


2. 그러나 아테네 민주주의의 약점은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공적 영역에 헌신할 수 있도록 생활의 광범위한 비민주성이 긍정되어야 한다는 점. 이러한 물질적 기반 없이 공적 영역에 헌신할 수 없다는 유물론적 발견은 매우 중요. 이 점에서 오늘날 급진적으로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것은 매우 사회주의적 유토피아를 요구하는 셈. 그러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민 대중의 엄청난 노동헌신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또한 이것은 오늘날 민주주의가 미국을 중심으로 자본주의 세계의 편에서 확산된 이유를 설명해줌. 한편 이러한 물질적 기반이야말로 시민의 동질성을 확보해주는 중요한 수단. 오늘날 빈부의 격차가 민주주의에의 헌신을 방해하는 중요 요소가 된다는 점을 정치학적으로 인식해야 함. 후속 연구로서 사회학에서 빈부격차와 국민적 동질성을 살펴볼 필요.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으면 우리는 이건희 회장과 같은 나라에 살지 않는다고 여기게 되는가? 가능한 논의? 오늘날 국민적 동질성은 칼 슈미트 식의 적과 동지의 구분이라기보다 정치에의 헌신 여부로 가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


3. 플라톤의 비판은 자유와 평등의 약점을 지적. 평등은 지혜를 무시하며, 자유는 권위와 질서를 무시한다는 것. 문제는 그 자유와 평등이 정치적이라는 점. 이것은 개인적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으로 파급력을 갖고 중요한 결단에도 적용되기 때문에 문제. 플라톤은 정치적 자유와 평등을 현자의 덕성으로 해결하려고 함. 즉, 정치적 영역의 자유와 평등은 강력한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물론 플라톤은 기타 개인적 영역의 자유를 인정했는지도 모르겠거니와 깊이 고찰하지도 않았음. 논외.) 오늘날 정치적 자유와 평등도 여러 분야로 세분화되었기에 이를 일관하여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 예컨대, 진입의 자유와 평등인지(정당 가입, 입후보, 공무담임), 행사의 자유와 평등인지(정당 활동, 의사표현, 선거, 투표) 등등. 물론 이 구분도 명확하게 나뉘어 지는 것은 아님. 그럼에도 플라톤의 주장은 정치적 자유와 평등을 고민할 때 이러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함의를 제공. 중요!
또한 정체의 안정에 있어서 권위가 중요하다는 점. 무엇을 권위로 둘 것인가는 공동체의 합의와 문화의 문제. 다수의 합의를 권위로 할 것인지, 숙의에 의한 결과나 과정 자체를 권위로 할 것인지. 예컨대, 미국은 다수의 합의에 권위를 인정하는 문화. 선출직에 권위 부여. 권위로 인정된 부분은 이를 되돌리기 위한 깊은 논의와 심대한 문제제기가 필요. 그러나 우리나라는 무엇이 권위인가? 대통령의 중요공약도 숙의되지 못한채 남발되는 현실. 대운하 사업이 표류하고 어거지로 추진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권위에 대한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기 때문.

4. 역사적으로 많은 정치사상가들은 민주주의자가 아니었고, 어떤 점에서 권위주의자인 경우가 많았다. 그것은 그들이 본 민주주의가 적었기 때문 아닌가? 어쨌든 세계는 상당부분 민주화되었고 민주주의의 비판자들의 욕을 먹으며 개량되었다. 그들이 수 천 년에서 수 백 년 후의 정체를 보고 비판했다면(물론 현실을 보고 비판한 것이었지만), 우리도 민주주의 자체보다 최소한 수 십 년 후의 미래를 생각하며 큰 안목의 정체를 비판할 필요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