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파탄났다. 파탄도 이런 파탄이 없다. 상임위원의 2/3가, 전문-자문-상담위원의 1/4이 옷을 벗었다. 내부 공무원들도 옷을 벗기 시작하더니, 아예 조직의 수장을 비판하는 지경까지 왔다. 이상한 단체가 회의 중에 난입하지를 않나, 인권위의 파트너인 시민-인권단체들은 오히려 인권위에서 항위농성을 벌이기까지 했다. 이 지경인데 인권위는 묵묵부답이다.

현병철 위원장 ⓒ한겨레



이미 언론과 시민단체들에서 밝혔다시피, 이 사태의 발단은 이념도 아니고 현병철 인권위원장의 몰인권적 작태이다. 그럼에도 인권위원장의 인식은 현 상황이 일부 (이념적) 세력에 의한 인권위 흔들기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이 정도면 몰인권적을 넘어 몰상식적이기까지 하다.

현 위원장의 버티기는 청와대의 지지가 아니고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알다시피 청와대에서는 사임한 상임위원의 한 자리를 벌써 새로운 위원을 임명하여 채워넣었다. 그러나 신임 김영혜 위원조차 인권 문외한에 친 MB 인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정도면 어떤 메시지가 현 위원장에게 전달되었는지 안 봐도 훤하다.

문제는 MB 정권 하에서 이러한 뭉개기 전법이 수차례 반복되었다는 것이다. 청와대 비서관, 장관, 영진위원장(, 여기에 확대하면 신영철 대법관까지) 등등 문제 인사들은 자신을 향한 비판을 일부 세력의 비판으로 여기고 돌아설 줄을 몰랐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지겠거니 여기는 것이다. 그리고 슬그머니 태도를 바꾸어 정부를 향해 이념적 시각으로 편향된 비판을 하는 그 자들을 향해 되레 비난을 퍼붓기 시작한다. 이것이 촛불집회에 대한 MB식 반응이었다.

물론 모든 공직자들이 비판 앞에서 옷을 벗어야 된다면 공직의 중립성이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다. 그러나 항상 문제삼는 상황은 그 정도를 넘어선 것들이 많았다. 특히 이번 인권위 사태는 말할 것도 없다. 이건 끝장났다는 수준이다. 이 정도면 양심이 있는 자라면 조직을 위해서라도 물러나줘야 하는 것이 상책이다. 무엇이 아쉬워서 대학 교수이신 훌륭하신 분이 자리에 연연하시는가. 오히려 MB 정부에 대한 없던 음모론도 생길 판이다.

인권위는 조직상 독립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다. 특히 국가와 공공기관, 기업과 학교 등 개인이 상대하기 버거운 거대 조직을 상대로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본질적으로 대신 쓴 소리를 해주는 기관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서 인권위의 권고를 정부가 성실히 시행하는 비율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어차피 안 지킬거면서 왜 MB는 그렇게 인권위를 장악하려고 하시는가. 차라리 인권위는 인권위대로 떠들고, MB는 MB대로 가시는 게 솔직한 것 아닌가.

MB 정부에서는 모든 일이 왜 이리 솔직하지 못한가. 차라리 인권위를 없애겠다고 말하면 확실히 논쟁이라도 생기지. 공을 인권위와 시민사회 간의 다툼으로 돌리는 것은 너무나, 너무나 비겁한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