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사법연수원 41기와 로스쿨 1기의 법률시장 배출을 앞두고, 언론에서 앞다투어 변화된 현실을 전하기에 바빴다. 논지는 대체로 '경쟁심화', 속된 말로 좋은 날은 다 갔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법연수생이나 로스쿨 졸업생이나 차이가 없다니 사실 서로 싸울 일도 아닐 수 있겠다. 

그런데 이런 기사를 두고 속이 쓰린 것은, 단지 좋은 날 다 지나고, 주변 사람들이 몰래 고소한 웃음을 짓기 때문만은 아니다(전혀 없다고는 말 못하겠다). 정말 속이 쓰린 것은 로스쿨 도입이라는 사법제도개혁 취지와 다르게 모든 기사가, 소위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사시합격생" 혹은 "로스쿨졸업생"의 취업현황이라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로스쿨 도입은 사법제도 개혁이라는 대의보다 성공이라는 우리의 근원적 욕망에 연결된 문제일지 모르겠다. 아니, 나는 그것이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마 앞으로의 어떠한 보완책도 할 성공적일 수 없을 것이다.


  한겨레 신문을 읽다가 로스쿨 도입에 대한 쓴 소리를 발견했다(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26557.html). 눈을 의심했다. 아니, 한겨레가?? 사실 로스쿨 도입은 개혁진보진영에서 더욱 기를 쓰고 찬성하기는 했었다(유일하게 민주주의법학연구회에서 반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기에 진보진영에서 로스쿨을 비판하기에는 사실 껄끄러운 부분이 있을 것이다. 물론 아직 도입도 몇년 되지 않은 제도를, 게다가 이제 막 사회에 진출한 첫 졸업생을 배출한 마당에 실패라느니, 애초에 문제였다느니, 이런 말을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러가지로 예견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애정어린 비판과 감시가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라는 매우 초보적인 수준의 안타까움이 있다. 

이미 로스쿨이 도입된 마당에 그 도입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무의미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최소한 도입취지와 목적을 다시금 되새겨 보는 태도는 필요하다고 본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로스쿨 도입이 이러한 목적 외의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자인하는 꼴이 될 것이다. 로스쿨에 애정이 있다면, 아니 최소한 사법제도개혁의 취지에 공감한다면 도입취지와 목적에 기반한 비판을 멈추지 말 것이며, 이를 귀기울여 들을 일이다. 로스쿨을 반대하기에 비판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애초 법조인 양성제도 개혁을 놓고 문민정부 시절인 1995년 그 논의가 시작한 이래 수많은 제도가 제안되었다. 애초 그 논의가 시작되던 당시에는 문민정부의 특성상 "세계화"라는 대의 하에 논의가 전개되었다. 물론 단순히 저 "세계화"라는 말을 희화화할 것만은 아니다. 세계적 추세에 뒤졌다는 것은 제도의 형태만이 아니라, 역사적 역할과 그 내용에도 있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법조양성 시스템이 개혁되어야 함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이후 논의는 지지부진한 채, 발본적 개혁보다는 사법시험 합격자 증원이라는 꼼수로 겨우 버티고 있었다. 1981년 합격자를 300명으로 확정한 것을 시작으로 1996년 500명으로 증원한 이래 매년 100명씩을 늘려 2001년 합격생 1000명 시대가 이루어졌다. 아직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변호사 수가 증가한 이상 법조인 양성제도 개혁이라는 근본적 문제를 도외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역대 가장 진보적인 정권이라 할 수 있는 참여정부 하에서 사법개혁이라는 대의를 내세웠을 때, 상당한 호응을 얻었던 것도 사실이다. 


  로스쿨 도입 전까지의 법조인 양성 시스템은 주지하다시피 사법시험이라는 선발제도와 사법연수원이라는 교육제도로 이루어져 있었다. 문제라고 지적된 가장 큰 부분은 사법시험이 기존의 법학교육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유일 선발체제인 점이다. 즉, 대학에서 어떤 법학교육을 배웠든지 법조인이 되기 위해서는 사법시험 형태에 맞는 수험공부를 반복해야 하고 게다가 사법연수원에서의 새로운 실무교육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여기에 법과대학은 개입의 여지가 전혀 없다. 이는 우리 법조양성 시스템이 공교육 현장이 아닌 사교육 현장에 의존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는 도덕적 반성을 가져왔다. 뻔히 대학에서 법학을 배웠음에도 법조인이 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이 수치스러운 상황을 보라.

많은 사람들이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면 사법시험 정도는 (합격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타당한 지적이다. 그러나 나는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마 대학에서 4년을 법학을 공부했더라도 그 지식만으로 사법시험에 응시한다면 1차 시험 성적이 50점이 채 안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대개 1차시험 합격 컷은 70점에서 80점 초반 사이이다). 그만큼 대학교육과 법조양성제도는 괴리되어 있다. 어느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탓하는 것이 아니라 실상이 그랬다는 말이다. 

대학의 전공수업시간 안에 모든 것을 가르친다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이것은 법학만이 아니라 모든 학문이 마찬가지이다. 문제는 사법시험이 최소한 질의 문제가 아닌 양의 문제로서 첫 단계를 걸러낸다는 것에 있다.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대학 4년간 최소한 민법 전부를 강의들어본 바 없다. 모든 교수는 해당 범위를 다 끝내지 못했다. 심지어는 거의 채권총론의 총론만 강의하다 끝난 수업도 있다! 아마 단순히 내가 수업을 통해 들은 민법의 양적인 측면을 계량한다면(정말 개략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사법시험 출제 범위의 1/20 정도밖에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론적인 부분만 놓고 본다고 해도 1/4 정도가 아닐까. 민법이라는 단일법을 6개의 수업에 나누어 들었음에도 이 정도이다. 법조인이 되기 위해서 한 개인이 대학에 의존하는 부분이 이 정도라면 어느 누구도 굳이 법학과에 가서 여기에 열중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법학교육의 파행의 원인이며 법학교수의 수치인 셈이다.

그렇기에 과거 대안으로 제시된 거의 모든 제도가 실상 대학교육과의 연계 회복을 내용으로 삼고 있었다. 이는 효율성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었겠지만, 앞서 말했듯이 도덕적 측면의 문제를 위해서도 제안된 것일테다. 공교육의 수치를 만회해보고자 하는 것이 로스쿨제도 도입의 중요한 일면이다. 우리 시대의 법조인은 독학(실상은 거의 사교육)으로 자생한 존재가 아닌 사회가 길러낸 존재여야 한다는 말이다. 


  글이 너무 길어졌다. 오늘은 이 부분만 짧게 논하고 마쳐보자. 그런데 현재 로스쿨 도입이 정말 이 공교육의 수치로부터 벗어난 것이냐 하는 점이다. 아니, 본질적으로 이런 현상은 왜 발생했는지부터 설명해야 겠다. 왜 과거 대학교육은 법조양성제도와 괴리되었던 것인가?

혹자는 대학법학의 실무와의 괴리를 문제삼는다. 이론위주의 수업으로 법조 실무와는 너무나 괴리되어 있다는 것이다(그렇다면 대학에서 어떤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가는 다음 기회에 논해 보기로 하자). 이에 비해 사법시험은 상대적으로 판례위주의 문제이다보니 실무의 다양한 현안이 더욱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사법시험이 과연 실무와 큰 연계성이 있는가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실무에서 판례를 그대로 암기하고 있는지가 과연 중요한가? 현대와 같은 정보화사회에서 판례검색을 하면 다 나오는 내용을 굳이 암기하고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게다가 사법시험도 마찬가지로 비현실적인 이론에 목매어 있지는 않은가? 예컨대, 형법에서 매우 중요한 착오론을 생각해보자. 이론의 중요성은 차치하고 과연 이것이 현실적합성이 있는 논의인가? 이것과 관련된 판례는 정말 극소수이다! 그말은 이런 일은 현실에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법시험도 법조인양성과는 괴리되어 있는 제도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이 말은 우리 사회의 어떠한 공적교육, 선발시험도 법조인 양성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 이러한 괴리가 발생했는지는 왜 사법시험이 어려워졌는지의 문제와 궤를 같이 한다. 그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법조인이 될 사람을 걸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 왜 법조인이 될 사람을 걸러내야 하는가? 그것은 기존의 법조인에게 있는 엄청난 특권이 소수(최대 1000명)에게밖에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대한 공정하게 하려는 노력이 오히려 역효과를 낳고 말았다. 이제는 사법시험이란 왠만한 배경이 없이는 접근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옛날처럼 절간에 들어가 독학을 하는 대신 신림동 고시학원에 등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인 것이다. 최근 최소한 내가 아는 그 누구도 신림동 학원의 도움 없이 이 시험을 통과한 이란 없다. 우리 사회의 이러한 황당한 고비용 체계는 한 곳이 더 있다. 수험시장이다. 말하자면 법조인 양성제도가 마치 수험시장처럼 아비규환의 현장으로 바뀐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평등에 대한 의식이 사뭇 강한 편이다. 이는 한국전쟁 이후 너나 할 것 없이 피폐해진 삶에서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건강한 신념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일류대학, 고시합격이라는 신분상승이 긍정되었던 것도 아이러니하게도 도저한 평등의식의 산물인 셈이다. 극소수의 법조인에게 주어진 특권이 긍정되었던 것도 사법시험이라는 제도가 지닌 극도의 평등성 때문이다. 아마 실존하는 평가체계 중 이만큼 공정에 대한 시비가 없는 시험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사법시험은 지나칠 정도로 어렵게 진화되었다. 난장판이다. 법조인이라는 존재가 이 정도의 지적수준을 요구하는 직업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의 이 법조인이 가지고 있는 특권이다. 돈과 밥의 문제이다. 법조직역에 대한 이러한 인식이 존재하는 한 어떠한 법조인양성 제도개선도 성공할 수 없다. 왜 국민들이 사법연수원 수료생과 로스쿨 졸업생의 월급에 관심이 가는 것일까? 그것은 대기업 초임자의 월급 비교 기사나 다를 바 없다. 그것이 사회적 공기이기 때문에 관심을 기울여주는 것이 아니다. 사법제도개혁이라는 대의 때문이 절대 아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사회적 인식에 대한 고려 없이 제도개혁을 논하는 것은 순진한 것이든, 환상적인 것일 뿐이다.


  이 점에서 우리 사회의 무의식-의식의 근저에 있는 사법제도 개선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법조인이 누구냐라는 문제이다. 그것을 어떻게 양성할 것이냐는 차후의 문제이다. 그렇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자조섞인 말로 사법시험이든 로스쿨이든 관심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법시험과 로스쿨입학을 준비하는 수 만 명의 준비생들과 그 가족들에게만 유의미한 문제일 뿐이다. 누구도 왜 이러한 개혁이 이루어진 것인지 그 목적과 취지를 알지 못한다. 단지 사법시험 합격해서 거들먹 거리더니 꼴좋다는 반응이고, 로스쿨 입학해서 판검사 다 된 것처럼 굴더니 꼴좋다는 식이다. 법조인 자체만이 아니라 법조인이 되기 위한 과정 자체도 대다수의 국민으로부터 유리된 그들만의 리그가 된 것이다. 

우리는 우리 사회의 법조인이란 누군가라는 문제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를 단순히 추상적인 논의로 치부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이를 통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사법개혁도 없다고 본다. 옳든 그르든, 과거에는 법조인이란 신분상승의 공정한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이는 6, 70년대의 산물일 뿐이다. 21세기 우리의 법조인상이 이것일 수 없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우리 모두의 인식이 여기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이 모든 문제가 꼬이고 있는 것이다. 

로스쿨 입학이 어려운 것은 사법시험에 비할 바는 아닐지 몰라도 사법시험이 없어진다면 똑같이 최고로 어렵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것은 수험시장에서 일류대학 입학이라는 경쟁을 뚫고 다시 그 중 최고의 학점이라는 경쟁을 뚫고 다양한 스펙 확보라는 것을 갖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로스쿨 입학이 어렵다는 말은 로스쿨 출신 법조인도 특권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이 점에서 법조양성 제도는 전혀 개선되지 않은 셈이다.


  그렇다면 입학 정원이 문제인가? 전혀 연관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정말 본질은 법조인이 누구냐라는 것이다. 현실에서 법조인은 우리 사회의 0.05% 정도밖에 안 되는 초일류계층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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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는 로스쿨 1기생의 졸업이 다가오면서 그동안 질질 끌었던 변호사시험 합격자 결정 방법에 대해 최종적으로 확정하기로 결정하였다. 전해지는 소식에 의하면 변협에서는 총 정원의 50%로, 법무부는 응시자의 50%로, 로스쿨학생협의회는 응시자의 80%로 합격자 정원을 정해야한다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한다. 즉, 변협안에 따르면 현행 사법시험과 마찬가지로 1000명을 선발하는 셈이 된다. 법무부안에 따르면 1천명에서 시작하여 매년 응시자에 따라 합격자가 늘어나는 결과가 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이에 비례하여 탈락하는 자도 누적된다. 로스쿨학생협의회의안에 따르면 일부 탈락자들을 감안하면 합격률을 보장하여 자격시험화 할 수 있게 된다. 이 안들 중에서 어떤 것이 채택될지가 향후 로스쿨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이 될 전망이다.

그런데 로스쿨학생협의회 쪽에서 단체행동을 보일 정도로 반발하는 것은 법무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법무부는 검사로 구성된 조직으로서 변협과 장기적으로는 직업적 이익을 같이 하는 집단이다보니 법무부의 분위기가 변협 쪽으로 기운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실제 법무부는 사법시험 정원제를 운영함에 있어서도 변협의 입장을 고려하여 획기적으로 정원을 늘리지 않았던 선례가 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서 법무부의 운신의 폭이 얼마나 넓을 수 있을 것인지가 관건이다.

그렇다면 변호사 시험 합격자 정원 문제가 발생한 것은 사법시험을 운영해 오던 법무부에게 당 업무가 맡겨진 이상 예정된 수순이라고 할 수 있다. 법무부는 로스쿨이 조기에 파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 문제를 미뤄왔던 것이고, 피해는 고스란히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로스쿨에 입학한 학생들에게 전가되고 있다. 이것을 로스쿨 학생의 이기주의로 치부하기에 앞서, 과연 법무부가 로스쿨에 대한 사법개혁 취지를 고수하고 이행할 수 있는 집단인지를 문제삼아야 한다. 이에 대한 대답은 심각하게 의문스럽다는 것이다. 로스쿨 정책은 노무현 정부 하에서 법무부 장관에 소위 정치인들이 기용됨으로써 추진 가능했던 공약이었던 것이었기에, 현 정부들어 다시 검사 조직이 된 법무부로서는 직역이기주의에서 벗어나 변호사시험 합격자 정원을 획기적으로 늘리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 경인일보



로스쿨 도입의 정당성의 유무를 넘어, 최소한 사법시험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고자 개혁을 시작한 것이라면 우선 그 취지에 맞는 운용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최소한 실질적으로 변호사 수의 획기적 증가, 변호사 시험의 자격시험화 등은 필수적으로 지켜져야 한다고 본다. 그것이 없다면 로스쿨이라는 이름의 사법시험이 반복되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로스쿨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추가적으로 발생하였기에 도리어 사법시험보다 더 비효율적인 제도로 왜곡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법무부는 변호사 시험 합격자 결정 방법을 정함에 있어 대의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안타까운 점은 이렇게 중요한 제도의 변경을 왜 그렇게 시급하게 처리했어야 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대체로 일본 제도의 수용이 쉽게 이루어지고, 그 문제점도 유사하게 반복하는 경우가 많은데, 로스쿨 도입의 문제도 이와 판박이이다. 그러나 일본만 하더라도 로스쿨 도입까지 우리보다 훨씬 오랜 기간을 검토하였으며, 우리와 달리 변호사 정원에 대한 일정한 합의가 있었기에 현재의 타협적 제도 운영에 대해 크게 문제라고 인식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의 경우는 로스쿨 도입 자체가 사법시험의 폐쇄성과 합격자의 일부 학벌 편중을 시정하기 위한 것을 목적으로 삼았는데, 이것은 일본식 제도 운영으로는 도무지 실현 가능하지 않은 목표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식으로 로스쿨을 시행한 것은 이미 파행을 예정한 것이었다. 도대체 아무런 대비 없이 왜 이를 감행하였는지 의문이 든다.

이에 대해서는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에도 분명한 책임이 있음을 밝혀야 한다. 그들의 이상이 옳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렇지만 그들이 성급하게 이를 추진하면서 오히려 왜곡된 제도가 형성되었고, 이제와서는 일부만의 개혁 성과라도 지키기에 급급하다보니 발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세 싸움으로 타협하기 일쑤인 방식을 자초하게 되었다.

더 근본적인으로, 과연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에서는 변호사 등의 법조직역을 어떻게 바라보았기에 로스쿨 도입 등의 해결책을 내놓았는가 하는 점이다. 단지 특권적 직업이기에 이를 해체하는 것이 목적인가? 그래서 정원수를 늘리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생각한 것인가? 참여연대 쪽 인사들의 칼럼을 보면 이런 표현이 많다. 변호사는 자격에 불과하므로 자격시험화하여 특권을 없애고, 정원은 시장에 맡기면 된다는 것이다. 변호사 질 하락은 시장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한다. 과연 이 말이 참여연대와 같이 진보적 단체에서 해왔던 말인지 심히 의심스럽다. 왜 변호사 문제에 있어서는 그들이 이렇게나 시장주의를 신봉하는지 모르겠다.

변호사는 상법상 상인이 아니다. 즉, 쉽게 말하면 변호사는 영리추구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들은 공익적 성격을 갖고 있기에 의무적으로 대한변호사협회라는 공공단체를 구성하고 자동 가입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여러 공적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이는 소송과 같은 공적 사무를 단지 시장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 법제에서는 변호사를 절대 시장주의에 개방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참여연대가 시장주의적 방법으로 법조직역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체계정당성에 반하는 것으로서 해결책이 무엇인지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더 필요한 것은 변호사 직역의 공익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과연 로스쿨로 인해 앞으로의 법률서비스는 가격이 낮아질 것인가? 시민의 변호사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질 것인가?  아무리 긍정적으로 평가하더라도 이는 단기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미미한 효과에 그칠 공산이 크다. 이미 사법시험 하에서 변호사 시장도 학벌과 경력으로 양극화되고 있다. 시장주의에 의할 때, 과연 시민들이 자신의 재산과 자유가 걸린 문제를 쉽게 아무 변호사에게 맡길 수 있을까? 서울대 법학과를 나와서 사법시험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해 판사를 거쳐 개업한 변호사와, 동일한 조건에 로스쿨을 나와서 판사를 거쳐 개업한 변호사가 있다면 평가가 같을까? 법조직역의 보수성과 마찬가지로 시민이 바라보는 시각도 보수적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앞으로 로스쿨이 완전 정착하고 수십년이 지나지 않는 이상 변호사 시장의 더 극단적 양극화가 일어날 뿐이다. 따라서 시장주의적 방식을 해결책으로 제시할 것이 아니라 변호사의 공익성을 강제할 방안을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로스쿨과 같은 제도를 만들었다면 로스쿨 졸업생들부터 상당수를 공익변호사로 채용하여 저렴하고 질좋은 서비스를 국가 혹은 공법인에서 제공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로스쿨 입학금 자체를 국가가 지원하여 로스쿨 졸업생들은 의무적으로 수 년간 공익활동에 종사하도록 하는 방안은 어떨까? 어렵지 않은 법률분쟁에 대해서는 변호사들이 할당을 받아 처리하는 공영제를 운영하면 어떨까(버스공영제와 같이)? 이러한 공익성의 보완이 담보되지 않고 다수의 변호사를 쏟아내는 것만으로는 현 문제를 절대 해결할 수 없다.

나아가 항상 지적하였던 것이지만, 우리나라에 미국식의 로스쿨 제도를 도입할 것이 아니라, 독일식의 사법시험을 도입하는 것도 충분히 검토했어야 했다. 현 제도는 전문대학원을 소수 대학에 허용하면서 엄청난 등록금 인상과 오히려 학벌 특혜가 고착화되었다. 미국식 로스쿨 제도는  매년 로스쿨 순위를 발표하여 그에 따라 졸업생들의 장래가 결정되는, 그 자체로 줄 세우기와 친한 제도이다. 그럼에도 이를 학벌 편중을 위해 도입했다니, 기가 막힌 노릇이다. 이미 시장에서는 SKY법학과를 대체하는 차기 학과가 대두된지 오래이다. 또한 로스쿨은 사법시험보다 더한 진입장벽이 되어 계급 고착화 현상이 우려되고 있다. 이를 전향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단지 장학금 확대가 아니라, 등록금 인하와 로스쿨 확대에 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시스템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상황이다.

반면 독일식의 사법시험은 법학과의 학부 과정에 이어 실무 과정 등의 기간을 붙여 학부 졸업생은 누구든지 사법시험에 응시할 수 있게 하는 제도이다. 또한 졸업생도 정해진 과정을 모두 이수하고 충실히 따라오면 누구든지 합격할 수 있는 자격시험이기에 특별히 무리한 준비나 비싼 학비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전문대학원 체제로 전환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학부를 포함하여 5, 6년의 교과과정으로 확대하여 로스쿨을 학부 내로 편입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대학 수업의 파행을 막고 비용도 훨씬 저렴하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것은 예일 뿐이다. 방법은 많이 있다. 문제는 로스쿨이 능사는 아니었고, 현재와 같이 파행이 예견된 상태에서는 더더욱 그랬다는 점이다. 앞으로 지켜보아야 할 것이지만 앞 길이 어둡게 느껴지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안타까운 것은 로스쿨이 설치된 학내에서는 기존의 법대생과 로스쿨 학생이 나뉘어 반목이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는 서로에 대한 도를 넘은 비방과 모욕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 변호사 시험의 정원제 문제까지 터져나왔을 때 과연 로스쿨이 실질적으로 기능할 수 있겠는지는 의문이다. 실제 학생들의 자퇴 동의서 제출 정도만 보아도 상당수가 이미 로스쿨의 매력을 잃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사법시험 출신과 로스쿨 출신의 실력 비교에 대해 이러저러 할 말이 있을 수 있지만, 말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이미 비이성적인 논쟁으로 전락했다. 부디 같은 직역에 종사하려는 자들로서 예의를 지키고 법률가로서의 언행과 품위를 지켰으면 한다. 그리고 정말 로스쿨 제도가 성공적으로 안착하기를 기원한다.